사법고시 합격이라는 소식이 법대가 아닌 컴퓨터학부에서 들려왔다. 바로 그 주인공은 숭실대학교 94학번 서영 선배. 기쁜 소식을 접하고 인터뷰를 청하였으나 시간이 여의치 않아 서면 인터뷰로 대체하였다. 최근 사진이 없어 마땅하게 전해줄 사진이 없다는 서영 선배의 답변에 합격을 위해 얼마나 혹독한 시간을 보냈는지 느낄 수 있었다. 현재 법무법인 정민에서 근무하며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서영 선배. 그녀의 당찬 이야기를 들어보자.
Q. 기술고등고시가 아닌 사법고시 합격이라고 해서 적잖이 놀랐습니다. 전공이 아닌 다른 분야의 도전이 낯설고 힘드셨을 텐데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A. 예, 저는 법대친구도 한명 없고 그쪽에 관심도 없어서 사법고시는 상상조차 안 해봤던 일입니다.
그런데, 예전에 직장 다니다가 관세사 공부를 잠깐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저를 지켜보셨던 몇몇 분께서 사시를 해보라고 적극 권해 주셔서 그 때는 그냥 웃고 넘어 갔었는데 그게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직장에서 인간관계로 너무 힘들어하던 어느 날 문득 사시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한 번 뿐인 인생 무언가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강력한 욕구가 생겼고, 낯설기 때문에 더욱더 끌렸습니다.
Q. 3시 중 가장 어려운 시험이 사법고시라고 들었습니다. 그만큼 전공자에게도 힘든 시험인데요. 준비하시면서 포기하고 싶으셨거나 슬럼프로 인해 힘드셨던 적은 없으셨나요? 혹, 그러셨다면 어떻게 그 시기를 극복하셨는지요?
A. 되고 싶다는 소망이 워낙 간절했기 때문에 포기하고 싶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워낙에 생소하기 때문에 제가 모르는 건 당연하다고 마음을 편하게 먹었었고,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아서 그런지 전혀 새로운 분야에서 무언가를 알아간다는 것이 무척 재밌었습니다.
특히 저는 직장생활을 유독 힘들게 해서 일을 안 하고 책을 보고 있는 제가 신선이라도 된 것처럼 행복했고, 군것질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만화책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고, 밤새 공부하고 싶으면 공부하고, 자고 싶으면 대낮에도 자고...그렇게 제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슨 왕이라도 된 것처럼 좋았습니다.
단지, 시험에 대한 불안함,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가끔 극도의 공포심을 느낄 때가 있었는데 다행히 좋은 친구를 만나서 그럴 때 마다 위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후배님들께서 무언가에 대해 불안하고 그로인해 포기하라는 유혹을 받고 계신다면 부정적인 생각은 절대 하지 마시고 여러분 자신을 강하게 믿고, 나는 원래 운이 엄청 좋은 사람이니까 어떻게든 된다고 긍정적인 생각만 하시라고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제 경험상 지나친 걱정은 정말 독이었습니다.
Q. 숭실대 컴퓨터학부 출신의 법조인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A. 법대를 나와 법조계를 걷는 것은 분명 그 나름의 깊이와 강점은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제한적인 시각과 마인드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현재와 같은 무한경쟁 시대에서 자신만의 특화된 분야는 필수항목이 되어가고 있고, 컴퓨터를 전공한 법조인은 IT나 지적재산권 관련 분쟁 등에서 분명히 차별화된 법적 해결능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Q. 보편적으로 “사법고시 패스 = 인생 성공”이라는 공식이 일반 사람들에게 있는데요. 실제로 사법고시에 패스하신 입장으로서 이런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일단은 성공의 정의가 문제되는 데, 사회에서의 대우나 경제적인 처우를 성공이라고 생각한다면 앞으로 자신의 능력 여하에 따라서 남들보다는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성공은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길을 찾아서 거기에 기꺼이 자신을 받칠 수 있으며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법조인이 되는 것이 진정 자신이 원하는 일이라면 그 입문과정까지는 성공한 것이니까 저 공식이 성립될 수 있겠지만, 사법고시가 아니라 그 어떤 것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기쁘게 할 수 있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대부분의 여학우들이 전공 공부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는데요. 선배님은 학창시절에 어떠셨는지요?
A. 저는 가정형편 때문에 장학금을 받아야만 해서 전공공부는 학교도서관에서 잠시라도 예습, 복습하는 습관을 가졌었습니다. 덕분에 성적은 좋았었는데, 제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저는 ‘4학년이 되면 당연히 취업이 되겠지, 영어도 일어도 이 정도만 해놓으면 되겠지, 컴퓨터도 그 회사에 가면 거기에 필요한 기술을 따로 가르쳐주겠지’ 라는..그러나 사회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취업이 당연히 되는 것도 아니었고, 취업해도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체험하고야 알았습니다.
여후배님들..조금 못 따라갔다고 절대 자신을 책망하지 마시고, 이제부터 잘하면 되는 거니까 목표와 계획을 잘 세우셔서 실천하시고 주변 도움도 받아가면서 즐겁게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미래의 진로에 대해 참 불안한 시기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펼쳐질 무궁무진한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는 특권층 이시자나요. 그 계급을 즐기시면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해보시기 바랍니다.
Q. 좀 유치한 질문이긴 한데요. 컴퓨터 공부가 어렵나요? 법 공부가 어렵나요?
A. 두 가지 다 어렵지만 그렇게 때문에 매력이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컴퓨터 공부는 잠시도 손을 놓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하는 속에서 늘 깨어있어야 하는 압박감 때문에 힘들고, 법 공부는 정확한 답이 있는 게 아니고 모든 구체적 타당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컴퓨터를 잘 하시는 여러분이니까 법도 잘 하실 수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Q. 마지막으로 후배들을 위해 해주실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A. 사실 제가 인터뷰를 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고, 많이 부끄럽습니다. 부족한 제 얘기가 여러분과 조금이라도 맞는 부분이 있어 도움이 되신다면 저로서는 정말 고맙고 기쁜 일입니다. 저는 대학 졸업 후 벤처기업에서 개발자로 일하다가 학원 강사도 하고, 철도청에서 표도 팔다가 자동차보험 상담원도 해보고, 암보험도 팔아보고, '줄리아나'라는 이름으로 아이들 영어도 가르쳐보고, 카드회원 유치하는 일 등등 정말 많이도 돌아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 저같이 자기 자리 못 찾고 오래도록 방황한 사람도 있으니까 여러분은 지금 엄청 행복하신 거예요. 여러분은 모두 우주에서 유일한 가장 위대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자신을 사랑하면서 멋진 미래를 상상하시며 매 순간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서면 인터뷰 내용을 읽어보며 '성공이란 무엇인가'라고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알지 못한 채 세상의 성공을 위해 힘겹게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 그 만큼 노력하고 있는지, 내 인생과 성공의 방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여러 삶의 경험을 통해 얻은 서영 선배만의 철학은 아마도 사법고시 합격자라는 타이틀 보다 값진 그녀만의 무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취재 : 김성오 기자(ksomclv@naver.com)
편집 : 김성오 기자(ksomcl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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