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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1/08/31  채유라
캄보디아, 그곳에서 꿈을 꾸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한 캄보디아에서의 행복한 날들

  지금 생각해보니 마치 깊은 꿈을 꾼 듯하다. 2011년 7월 2일 새벽. 캄보디아 프놈펜 국제공항에 발을 내딛는 순간, 나의 현실은 정지했다.

  내가 의도하는 꿈을 만드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매일 이른 새벽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아이디어 회의를 해야 했고, 또 학과공부 할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문화공연 연습으로 구슬땀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두 달간의 그러한 고된 준비과정 속에서 나이, 성별, 학과, 성장배경 뭐 하나 공통점이 없던 우리 19명의 팀원들은 점점 가까워져 갔고 결국 ‘봉숭아(봉사하는 숭실 아이들)'라는 이름 아래 하나가 되어갔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같은 꿈을 꾸었다.

 

봉사에 대한 열정으로 뭉친 '봉숭아' 팀원들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 수도라고는 하지만 한국 지방도시의 읍내에도 못 미치는 그 곳의 변두리에, ‘호산나 센터’라는 자그마한 학교가 있다. 그 곳에 도착했을 때 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저히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라고는 볼 수 없는 낡은 시멘트 건물이 있었는데, 벽에 붙은 ‘호산나 센터’라는 팻말만이 이곳이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페인트칠은 다 벗겨져서 흉물스럽기 그지없고, 어울리지 않는 철창들이 문을 대신하는 이곳이 학교라니, 정말 이런 곳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받는다니... 하지만 이 호산나 센터는 캄보디아에 있는 학교 중에 시설이 좋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도대체 이 나라는 얼마나 가난한 건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실제로 이곳 학생의 대부분은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이고, 그 중엔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학생들도 태반이었다. 솔직히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시설도 시설이지만, 그곳의 아이들은 왠지 어둡고 우울할 것만 같았다. 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이냔 말인가.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의 사랑은 커녕, 먹고 살기 위해 구걸을 하러 길바닥으로 내몰려야 했던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을 내가 가르쳐야 한다니 과연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열악한 교육환경을 보여주는 '호산나 센터' 학교

 

  하지만 그런 나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음날 만난 호산나의 어린이들은 너무나도 밝고 순수했다. 아이들의 얼굴엔 항상 웃음과 미소가 가득했고, 그 얼굴 속에서 내가 걱정하던 어둠과 우울함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저 축구와 태권도를 좋아하는 남자아이들과, 고무줄과 소꿉장난을 좋아하는 여자아이들이었다. 캄보디아에도 불어온 한류열풍에 힘입어 한국의 아이돌가수를 좋아하는 보통 아이들이었고, 그들의 나라 ‘한국’과 그곳에서 온 우리들을 ‘슈퍼스타’라며 좋아하고 따르는 순수한 아이들이었다.

  그 중에 초등학교 6학년 정도의 ‘사라’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질 않는 아이였다. 항상 밝았고 웃음기를 머금은 얼굴로 모든 일에 적극적이었다.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기에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나를 너무나 좋아하며 따라주었고 나도 사라를 특히 좋아했었다. 하지만 맑은 미소를 짓는 사라의 입에서 충격적인 말을 들어야 했다.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AIDS 감염자에요.” 나는 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던 캄보디아의 아이들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은 우리도 웃음짓게 하였다.

 

  행복? 도대체 그 행복이란 것의 기준은 무엇인가. 나는 부모님 두 분이 모두 건강하시고, 따뜻한 집도 있고, 물질적으로도 이들보다 훨씬 풍요롭다. 이들보다 배운 것도 훨씬 많고 아는 것도 훨씬 많다. 분명 가진 것도 누리는 것도 그들보다 훨씬 많은 나인데, 정작 행복한 건 나보다는 그 아이들인 듯 했다. 난 뭐가 그리 모자라서 항상 불평과 불만에 쌓여 살고 있단 말인가. 가진 것 하나 없는 이 아이들도 이렇게나 행복해 보이는데 말이다. 난 분명 캄보디아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자격으로 갔지만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쳐 준 것보다, 내가 그 아이들에게 배운 것이 훨씬 큰 것 같아 부끄럽기만 하다. 그 곳에서의 일주일은 현실속의 나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해주는 귀중한 계기였고,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찾게 해준 값진 시간이었다. 그렇게 그 곳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진 채 꿈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왔다.

 

'봉숭아'팀원들과 캄보디아 아이들과의 즐거운 한 때

 

  사실 캄보디아에서의 꿈에서 깨어나기 전까진 몰랐다. 이게 어떤 꿈인지. 허나 꿈에서 깨고, 현실로 돌아보니 알 것 같다. 그 꿈이 정말, 내 인생에 다신 꿀 수 있을까 싶은...아주 ‘행복한’ 꿈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취재, 작성 : 박명훈 객원기자(컴퓨터학부 07학번, 숭실대학교 하계 캄보디아 해외봉사팀 ‘봉숭아’ 팀장)

편집 : 컴타임즈 편집국(chicrebecc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