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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comtimes.kr/news/207
발행일: 2009/08/31  김찬수
2009 Summer English-Camp in Cambodia.
순수한 눈망울을 간직한 그 곳, 캄보디아.

 

  학교 홈페이지에서 하계 해외 봉사단원을 모집하는 공지를 보았다. 다른 학생들과 구별되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전공인 컴퓨터가 전부인 나는 면접관에게 " 무조건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만 외쳤다. 마음이 전해진 것인지 하계 봉사단원으로 캄보디아에 갈 수 있게 되었다. 하계 봉사활동은 영어캠프가 주제로, 모든 수업과 생활을 영어로 진행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다. 내 역할은 PC수리와 기초적인 컴퓨터 교육. 다행히도 컴퓨터는 모든 용어가 영어라 해도 과언이 아니므로 기초적인 생활 영어만 익히면 되었다. 기말고사가 끝난 뒤, 매일매일을 팀원들과 준비하느라 어느덧 한 달의 시간이 지나갔고 나는 이미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채 아이들을 만나러 가고 있었다.

 
버스 창 밖 넘어로 보이는 프놈펜 거리

 

   수도 프놈펜에 도착해, 제일 신기했던 광경은 도로에 오토바이가 굉장히 많다는 것. 차에서 내리면 어디를 가든 기념품 바구니를 든 아이들이 " Only 1$! 1$ " 를 외치며 내 주위를 포위 한다는 것. 바다를 건너 왔다는 느낌이 들어서 일까, 우리와 같은 풍경이 많았음에도 무언가 캄보디아는 우리와 다르다는 이질감이 더 강하게 다가왔다. 캄보디아는 더운 날씨가 인상적이었으나, 그들이 배우고자 하는 열정만큼은 우리나라 강남 학부모들보다 더 뜨거웠다. 피부색도 다른 처음 본 사람들에게 먼저 해맑게 웃으며 우리가 말하는 모든 것을 흡수해 버리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시작으로 이들과 나 사이에 느꼈던 이질감은 점차 제로에 가까워진다. 수도 프놈펜에 한국인 선교사님께서 세우신 '호산나 센터' 는 우리가 일주일간 아이들에게 영어캠프를 진행 할 곳이다. 우리는 팝송이나 아리랑과 함께 율동, PC교육, 별자리 교육, 혈액형검사, 태권무, 과학교육 등을 아이들에게 영어로 수업할 예정이었으나, 아이들은 생각보다 회화를 잘 했기에 다음날 수업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남아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했던 PC 수업 시간

  내가 맡은 PC교육은 호산나 센터에서 조금 떨어진 우리 숙소 2층에 마련된 컴퓨터실에서 이루어 졌다. 2층 컴퓨터 실은 여학생 숙소였으나 낮에는 짐을 한 곳으로 치우고 교실로 사용되었다.8대의 PC가 간신히 설치된 조그만 방이었지만 유일하게 에어컨이 마련되어 있어 시원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홀로 혜택을 누리는 듯 했으나, 아직 전기시설이 미비한 탓에 에어컨을 작동시키면 과부하로 모든 PC가 셧다운(Shut Down)되어, 에어컨은 자린고비 집안 천장에 매달린 굴비 신세였다. 그렇다고 PC교육이 무난히 진행되었다면 다행이었다. 중학생때 사용했던 펜티엄 컴퓨터가 대부분이라 속도도 많이 느리고 이상하게 윈도우 실행자체가 되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이러한 이유로 남들은 저녁식사 후 여학생들이 편안히 쉬기도 부족한 공간에서 눈치 보며 컴퓨터 본체를 매일 뜯어 고치는 작업이 끊이질 않았다. 아직도 입에 맴도는 말이 있다.

 

 "Hey, Guys!",

 "Come here, follow me!",

 "Do you understand?".

 

   영어가 부족한 내가 아이들에게 주의집중을 요하거나 수업을 원만하게 진행하기 위한 짧은 회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꽤나 수업을 이끌어가기 위한 열정이 겨자씨만큼이라도 남아 있던 것 같다.

 

 
상단: 별자리 교육 체험관, 하단: 호산나센터 아이들과 단체사진

  내가 참여했던 수업은 이외에 별자리 교육, 퓨전 아리랑, OT(Orientation)이었다. 별자리 교육 때에는 자취방만한 공간에 나무로 지지대를 세우고, 검은 천을 두른 뒤- 블랙 라이트(Black Light; 흰색에 형광으로 반응하는 형광등)를 설치하고 방안 전체에 야광별을 붙여 시각적인 효과를 직접 주려고 했다. 블랙 라이트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전기재료를 직접 구매하여 시공해야 했는데, 아버지 어깨 넘어 곁눈질로 본 것 밖에 없는 나는 작동여부를 시험해 보기위해 콘센트에 꽂았다가 전기선이 스파크와 연기를 내며 타버리는 일도 일어났었다. 덕분에 검게 그을려지고 녹아내린 콘센트를 칼로 계속 긁어내려야 했지만, 같이 가신 단장님께서 마침 전기과 교수님이셨기에 후일은 모두 부탁드려 끝낼 수 있었다.

 

 
화장실에 페인트칠 하고 있는 캄보디아 해외 봉사단

  그 곳 아이들 중에 한국인 남매도 있었다. 부모님께서는 5년 전 캄보디아로 오셔서 한국인 식당을 운영하신다고 하였다. 그 중 큰 아이는 덩치가 꽤 큰 남자아이였는데, 내가 캄보디아 아이들과 의사소통하는데 에 큰 도움을 주어, 헤어질 때 서로 편지를 써주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현재는 이메일로 서로 안부를 주고받는다. 자꾸 게임CD를 보내달라고 해서 알았다고 대답했지만, 게으른 탓인지 아직까지 CD는 캄보디아로 배송될 계획조차 없어 이 기사를 마감하고 난 뒤 바로 게임CD를 구워야 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 태권무, 설겆이, 이발봉사, 목욕봉사 )

  모든 교육프로그램 일정이 끝난 뒤 우리는 이틀 동안 더 머물며 연무기로 방안 가득한 바퀴벌레와 도마뱀을 쫓아내고, 그 곳 화장실에 페인트칠을 하며 대청소를 했다. 내가 맡은 건 2층 창고 정리. 작고 습한 창고에 있는 박스를 모두 드러내니 약 40개정도의 박스가 나왔다. 마지막 한 개 남은 박스를 드는 순간, 영화에서 보던 바퀴벌레와 도마뱀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에 놀라 에프킬라로 모든 바퀴벌레를 죽였는데 나중에 빗자루로 쓸어야 될 정도로 바퀴벌레가 있었다.

 

   모든 일정이 끝난 뒤 우리는 씨엡립으로 이동해야 하기에 마지막으로 아침에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사진도 찍고 이메일도 주고받았다. 비록 기사로 실릴 글이기에 짧게 표현하게 되어 굉장히 아쉽지만, 캄보디아에서 있던 일들을 같이 갔던 친구들과 얘기를 꺼내노라면 밤이 새도록 끝날 줄 모른다. 그만큼 아이들에 대한 정이 많았는데, 무언가 떠나는 입장이라 아이들에게 조심스럽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이기에 눈물이 좀 났지만, 아이들에게 보이기 싫어 골목길 어귀에서 혼자 눈물을 살짝 훔쳤다. 나를 보고 있던 동네 주민이 있었는데 굉장히 신기하게 쳐다보는 것 같아 덕분에 눈물을 금방 닦고 아이들과 웃으며 작별인사를 할 수 있었다.

   

앙코르 바트 대학교 한국어과 학생들과 함께

  씨엡립으로 이동해 앙코르 와트 관광도 하고, 야시장도 둘러보고 앙코르 바트 대학 한국어과 학생들과도 만남을 가졌지만, 어느새 우리는 호텔에 모여 호산나 센터 아이들이 보고 싶다는 말을 되풀이 하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나를 포함하여 호산나 센터 아이들의 순수한 눈망울을 보며 따뜻한 마음이 잊히기 전에 잠시 기억할 수 있었다. 이 마음 잃지 않기 위해 지금도 가끔 아이들의 순수한 눈망울이 담긴 미니홈피의 사진들을 턱을 괴고 보고 있다.

   

  취재: 김찬수 기자(kcsjhz@gmail.com)

편집: 김찬수 기자(kcsjhz@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