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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1/12/12  권태헌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 스티브 잡스의 특별한 여정
애플을 이끌어나갔던 스티븐 잡스, 그의 삶을 재조명하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 미국의 기업가이며 Apple() 의 창업자. 애플 CEO로 활동하며 아이폰, 아이패드를 출시, IT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이자 혁명가의 특별한 여정을 만나보자.

 

애플 홈페이지에 게재된 스티브 잡스의 사진.

  필자는 숭실대학교 재학생 21살부터 24살 사이의 남녀 24명을 대상으로 스티브 잡스의 업적에 관한 설문조사를 11월 4일 금요일에 실시했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상당수의 학생들이 스티브 잡스의 창의성을 인정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숭실대학교 재학생 2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숭실대학교 재학생 2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숭실대학교 재학생 2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스티브 잡스는 1955 2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자마자 양부모 폴과 클라라에게 입양되었다. 그의 양부모는 엄격한 기독교신앙을 가진 미국 서부의 농부였다. 3살되던 해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사우스 샌프란시스코의 산업단지에 들어선 주택가로 이주하였고, 주변 전자회사에 다니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성장하였다. 이때 전자분야야 관심이 많았던 5살 형인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을 만나 교류했으며 스티브 잡스에게는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스티브 잡스는 청년기가 되어서야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당시 미국 히피문화에 흠뻑 젖어있었다. 히피문화는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시작되어 사랑과 평화, 자유, 화합과 존중을 추구하던 젊은이들이 이끈 예술 표현이다. 주로 뮤지션이나 아티스트들이 모여서 화려하고 재미있는 옷들, 독특한 아이디어들로 자신을 표현하며 진행했다.

히피운동 사진. 스티브잡스의 창의력은 히피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홈스테드 고등학교를 마친 뒤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있는 리드대학교(Reed College)에 입학하였다. 그는 마약을 복용했었는데, 대학교에 새로운 이상을 찾아 입학하면서 마약을 중단하고 동양철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1년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캘리포니아로 돌아가 아타리(Atari)라는 전자게임회사()에 취업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면의 정신적인 만족감을 얻기 위하여 히피차림으로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수개월간 인도 북부 히말라야 일대를 여행하였지만 그가 기대했던 만족감은 얻지 못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아타리에 복직하였다. 그는 컴퓨터 게임을 만들었으며 이때 다시 워즈니악과 친분을 쌓았다. 사업적인 수완과 마케팅 감각이 뛰어난 스티브 잡스는 전자분야의 지식이 해박했던 스티브 워즈니악의 도움이 있어야 그의 아이디어가 실현 가능했다. 각각의 장점을 합쳐 두사람은 1976년에 컴퓨터(회로기판)을 제조하는 회사를 공동창업하였다. 당시 회사이름은 스티브 잡스가 수행을 하던 장소였던 사과농장을 연상하여 애플(Apple)이라고 지었다.

젊은 청년사업가 시절의 스티브 잡스

  회로기판만 있는 PC ‘Apple 1’을 만들어 발표했으며, 당시 PC시장이 주목받게 되자 새로운 컴퓨터 플랫폼인 ‘Apple 2’를 만들어냈다. 획기적인 운영체제(Mac)를 적용하여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도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마침내 그들의 PC는 시장에서 큰 반응을 보이며 판매에 성공했고, 1980년에는 주식에 상장했다. 그는 억만장자가 되었으며 미국에서 최고 부자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그의 모순된 성격과 인색함으로 애플사의 핵심 엔지니어와 경영진 사이에 반목이 심해졌고, 이런 불화를 조화롭게 리드하지 못한 스티브 잡스는 결국 1985경영일선에서 쫓겨났다. 애플을 떠난 뒤 넥스트(NeXT)를 세워 세계최초의 객체지향 운영체제인 넥스트스텝(NeXTStep)을 개발하였고 1986년에는 조지 루카스 감독으로부터 픽사(Pixar; 애니메이션 회사) 1000만 달러에 인수하였다. ‘차세대 운영체제를 갖춘 그래픽 전용 컴퓨터로 의료업계에 판매를 시도했으나 넥스트와 픽사 모두 수익을 못 냈다. 그러나 픽사는 장편애니메이션영화를 만들면서 회생의 기미를 보였다.

스티브 잡스와 아내

  1991 3월 로렌 파월이라는 여성과 결혼하여 2명의 아이를 낳았다. 가정은 행복했지만 그의 사업은 그를 점점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픽사는 회사의 매출에는 기여하지 못했다. ‘토이스토리의 근간이 되는 틴토이를 만들어 아카데미상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며 세간의 관심을 받았지만 상업적 이익을 올리진 못했다. 넥스트는 일본의 캐논(Canon)사를 통해 투자를 받으며 겨우 버텨나가고 있었다. 1996년 마찬가지로 적자에 허덕이던 애플이 넥스트를 인수하였다. 언론매체 보도에 따르면 어떤 기자가 부정적인 뉘앙스로 질문한 데에 대하여 스티브 잡스는 자신만의 단순한 말로 확고한 자신감을 내비쳤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자의 질문: 당신이 애플에 복귀한 것은 많은 상징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마술과 같은 감각만으로 회사를 회생시키기에 충분할까요?

스티브 잡스의 대답: "당신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건 원맨쇼(한 사람의 쇼)가 아니란 거죠. 이 회사를 회생시키는데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 회사에는 정말 뛰어난 인재들이 많다는 겁니다. 그들은 지난 2년여간 세상이 자신들에게 패배자라고 말하는 것을 계속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몇몇은 이제 막 그 말을 믿으려는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패배자가 아닙니다. 그들에겐 훌륭한 코치와 뛰어난 계획이 없었을 뿐입니다. 좋은 경영진이 없었을 뿐이죠. 하지만 이제 그들은 그걸 가질 겁니다."

(비즈니스위크, 1998 525)

 

  스티브잡스는 13년만에 다시 애플로 복귀하여 경영 컨설턴트로서 4억달러 흑자를 내는 데 기여했다. 또한 픽사는 토이스토리의 대대적인 성공에 맞추어 상장하였다. 거의 빈털터리였던 스티브 잡스는 단번에 다시 억만장자가 되었다. 2006년에는 월트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하면서, 스티브 잡스가 월트 디즈니의 이사회 임원이 되었다.

애플의 로고.

  스티브 잡스 복귀 후 2년간 애플은 자본이 20억 달러에서 160억 달러로 증가했으며 픽사는 연이은 흥행성공으로 애니메이션 역사상 가장 성공한 영화사로 기록되고 있었다. 그는 항상 사용자중심의 디자인을 중시했는데, iTunes, iPod, iPhone, iPad, MacBook 등 세상에 없던 세계적인 히트상품을 발표했다. 사람들은 그가 만든 제품에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고, 많은 청중들 앞에서 청바지에 검은색 셔츠로 연설하는 모습은 마치 새로운 세상의 서막을 알리는 행사인 듯이 비추어졌다. 특히 iPhone은 통신업계 전반을 뒤흔들어 놓았고, 앱스토어(Appstore)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개발자로부터 방대한 양의 앱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생태계를 만들 정도로 문화적 파급효과도 지대했다 2010 1, 스티브잡스는 애플의 새로운 태블릿 컴퓨터인 iPad를 출시했고, 발매 1개월만에 1백만대가 판매되어 전대미문의 성공을 거두었다. 2011 3 2세대인 iPad2가 출시되었고, 이것은 발매 개시 1주일만에 1백만대가 매진되었고, 8월시점으로 25백만대 이상이 판매되어 애플 역사상 가장 큰 성공 사례가 되었다.

애플스토어가 11년10월30일 기준 판매하고 있는 상품.

  애플은 한 개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고 제품을 만들었는데, 음향전자기기인 iPod이 그러했고, 독일 온라인 언론매체 Financial Times Deutschland의 보도에 따르면 2007년엔 신차 개발을 위해 폭스바겐의 마틴 빈터콘 회장이 애플 CEO 스티브 잡스를 만나 친환경 전기차에 관하여 공동개발을 위한 아이디어 교환을 했다고 한다.

미 캘리포니아주 팰러앨토의 애플스토어 창에 수많은 추모글이 붙여져있다.

  2011 10 5일 스티브 잡스의 사망 소식을 세계 매체들이 보도했다. 애플은 이날 세계는 선견지명이 넘치는 창의적인 천재를 잃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를 알고 그와 함께 일할 수 있는 행복을 누린 우리는 소중한 친구이자 통찰력 있는 멘토를 잃었습니다. 스티브는 오직 그 자신만이 세울 수 있는 회사를 우리에게 남겨 놓았습니다. 그의 정신은 영원히 애플의 근간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라는 내용으로 혁명적 설립자의 사망 소식을 추모했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스티브 잡스를 기리는 인터뷰에서 “존레논이나 케네디 대통령이 죽었을 때와 같이 정말 놀랐다.”고 말했다. 스티브 워즈니악(1950~)은 스티브 잡스의 아이디어를 실현 가능하도록 도와준 천부적인 전자 엔지니어이자 오래된 친구사이다. 인터뷰 마지막에 눈물을 훔치는 워즈니악의 모습.

  스티브 잡스는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직원을 만날 때면 직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자넨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자신이 엘리베이터를 내릴 때까지 성공적인 답변을 하지 못하는 직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넨 해고야.” 통찰력있는 그의 행동을 볼 때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은 언뜻보면 힘든 일일수도 있다. 고정적인 위계질서가 회사에는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 애플의 CEO로서,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제공자로서 말이다. 그의 삶을 재조명하고 죽음을 애도하면서, 숭실인 또한 창의력 넘치는 인재가 되기를 바라본다.

 

사진 1,5,6 출처 : 애플 공식홈페이지(http://www.apple.com)

사진 2 출처 : 네이버 블로그(http://blog.naver.com/vintage0200) 

사진 3출처 : 프로젝트리서치(http://projectresearch.co.kr)

사진 4 출처 : 컨슈머저널 이버즈(http://ebuzz.co.kr)

사진 7 출처 : JoinsMSN(http://www.joinsmsn.com)

사진 8출처 : 유튜브 동영상 "Wozniak Tearfully Remembers His Friend Steve"(http://www.youtube.com)

 

 

 

작성 : 권태헌 기자(kwontaeheon@gmail.com) 

편집 : 컴타임즈 편집국(chicrebecc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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