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학생들이 대학생활의 로망으로 여행을 꼽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행은 소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유롭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지만 정작 돈이 없으면 자유를 느끼기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지속적인 수입이 없는 대학생이 주기적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사치스러운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이제 막 성인의 자유와 책임을 마주한 대학생들이 소모적이고 유희중심적인 여행이 아닌 진정한 여행의 의미를 깨닫는 것은 어렵다. 그렇다면 돈 없이는 진정한 여행을 할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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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복 고속버스 티켓만 가지고 떠난 여행 |
21살의 여름, 6명의 조원들과 함께 떠난 나의 첫 무전여행의 소지품은 카메라와 왕복교통비, 그리고 신분증이 전부였다. 여분의 옷도, 세면도구도, 신용카드도 없었다. 심지어 여행의 목적지도 당일날 추첨을 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결정된 우리 조의 여행지는 ‘전라북도 남원’이었다. 그리고 미션은 ‘광한루원에 들어가서 인증샷 찍기’. 그렇게 들뜨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남원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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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무전여행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무전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면 제일 많이 묻는 질문이 있다. ‘정말 돈 하나도 안 썼어?’,’그럼 밥은 어떻게 먹어?’,’그럼 잠은 어디서 자?’. 돈이 없어지면 인간은 그제서야 원초적인 것들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자본주의라는 프레임 안에 살면서 당연하다고 느꼈던 것들이다. 하지만 돈이 없는 나는 어떨까? 돈이 없다고 먹지도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한다면 과연 내가 지각했던 나의 삶이라는 것은 어디까지가 진짜일까. 돈이라는 가치 없이 나는 얼마나 나답게 나의 시간과 공간을 주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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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원사에서 첫 점심을 먹다 |
남원에 도착하여 돌아오는 버스표까지 구매하고 나니 수중에 돈이라고는 한푼도 없었다. 우리는 남원관광지도를 하나씩 펴들고 어떻게 하면 밥을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온 ‘선원사’. 우리는 무작정 선원사로 향했고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가득 찬 채 보살님께 사정을 설명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서울에서 무전여행을 온 학생들인데요..죄송하지만 점심 공양을 좀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우리의 고정관념에 대한 첫 도전이었다. 그리고 그 첫 도전에 반갑게 화답해주신 보살님 덕분에 이후에 더 큰 용기를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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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전여행 미션은 광한루원에 들어가서 인증샷 찍기! |
점심을 해결하고 난 뒤 우리는 광한루원으로 향했다. 성인 입장료가 일인당 2500원이었다. 다시금 거절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거절을 당하는 한이 있어도 일단 부딪혀보고 다음 방법을 찾기로 했다. 그런데 우려와는 달리, 아버지 연배정도 되시는 직원분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어서 들어가서 마음껏 구경하고 오라고 말씀해주셨다. 괜히 가슴이 뭉클해졌고 생전 처음 보는 우리를 믿고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을 베풀어 주신 데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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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치하이킹에 성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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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둘레길 시작지점에서 |
점심도 먹었고, 미션도 완료했고 점점 자신감이 붙은 우리들은 이제 진짜 여행을 시작했다. 지리산 둘레길을 걸어보기로 의견을 모으고 둘레길 입구를 향해 무작정 걸어가던 중 우리는 점점 말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더운 여름날씨와 가늠할 수 없는 거리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때 한 조원이 히치하이킹을 제안했다. 그러던 중 한대의 트럭이 길 앞쪽에 멈춰섰다. 인상이 좋으신 아저씨께서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로 우리를 반겨주셨다. 아저씨께서는 자신도 젊었을 때 돈 없이 여행을 다녀본 기억이 있다며 그때 모르는 분들께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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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룻밤을 신세지게 된 내송마을 마을회관 |
우리가 걷게 된 둘레길 코스는 내송마을을 지나치는 길이었다. 시골길이 너무나 정겹고 푸르렀던 그곳에서 우리는 마을분들의 도움을 받아 이장님께 사정을 설명 드리고 마을회관에서 하룻밤을 묵어가게 되었다. 아무리 시골이고 우리가 손주뻘인 학생들이어도, 쉬운 결정은 아니셨을텐데 이장님께서는 흔쾌히 자고 가라고 허락해주셨다. 이장님께서 젊으셨을 때 우리처럼 여행을 다녀본 기억이 많다고 하셨다. 신기하게도 이전에 모르는 분들로부터 도움을 받은 기억을 가지고 그 때 받은 것을 다시 베풀어 주시는 분들이 많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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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장님과 마을주민분들이 내어주신 맛있는 식사 |
이장님께서 저녁으로 가져다 주신 라면과 김치와 수박을 배불리 먹고 밤산책까지 마친 우리는 피곤에 지쳐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너무나 감사하게도 방금 한 따뜻한 밥이 문 앞에 놓여있었다. 마을회관 청소를 비롯해 힘쓸 일들을 도와드리고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리고 다시 시내로 돌아가던 도중 정말 우연히도 어제 우리를 태워주셨던 아저씨를 다시 길에서 만나게 되었다. 너무 신기한 인연에 놀라며 또 한번 감사하게 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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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향테마파크 입장도 성공! |
서울로 돌아가기 전까지 남원 곳곳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새 직접 부딪혀보는 데 익숙해진 우리는 춘향테마파크에 가서 사정을 잘 설명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수목원과 성당, 시장도 구경하고 마지막으로 교회에 가서 점심을 얻어먹었다. 그렇게 많은 것을 받기만 한 우리의 첫 무전여행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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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의 마무리, 남원 고속버스터미널에서 |
처음에 무전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두려움보다 앞섰던 것은 따로 있었다. 내가 나만을 위한 여행을 하면서 타인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굉장히 비상식적으로 느껴졌었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직접 경험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조차 두려움에서 나오는 핑계는 아닐까, 더 이상 소비에 휘둘리는 여행이 아닌 진정한 여행이란 무엇인지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무전여행은 단순히 소비에서 벗어나는 여행만은 아니다. 소비를 포함해 나를 증명해주던 많은 익숙한 물건들로부터 해방된 우리에게 여행의 시간과 공간은 굉장히 예민하고 생기있게 다가왔다. 우리는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누구든 만나고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나 자신을 믿는 자신감과 생존력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한번 깨닫게 된 멋진 경험이었다.
취재 및 촬영 : 최지원 기자(cwjw@naver.com)
편집 : 컴타임즈 편집국(plove02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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